헌터로부터

인터넷 서핑 중에 읽게 되었고, 읽고 난 한동안 삶에 대해 계속 자문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뭔가 뚜렷한 비전이나 솔루션이 생겨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삶을 보다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기 시작한 시점부터 방황한 모든 시간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번역해보았다. 하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자의적인 해석과 상상력에 의지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막상 공유하기는 망설여진다. 라고 작년 3월자로 노트되어 있다. 자료를 정리하다 다시 발견했고, 올해 새롭게 만난 친구들과 나의 그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원문에 대한 오역은 가차없이 알려주시라.


흄에게,

조언이라니, 얼마나 인간적인가. 또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힘은 자기가 우월하다는 생각, 즉 독선에서 비롯되기 쉬운법이지. 나아가야할 방향과 목표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하는 사람은 대게 얼간이일 뿐이지.

난 그런 얼간이가 아닐세. 하지만 조언을 구하는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네. 그러니 내 말에 귀기울기 전에, 모든 조언은 그 말을 뱉은 사람의 소산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게. 누군가에게는 진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거네. 나는 자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자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내가 구체적인 조언을 한다면 그건 아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형세가 될걸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참느냐, 아니면 액운에 맞서 대항하느냐…” (세익스피어)

삶이 흐르는대로 그저 살아가느냐, 아니면 목표를 향해 질주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생에 한번씩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이지. 하지만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해. 현재의 토대가 된 자네가 내린 과거의 결정들을 생각해보게. 아마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게 (의식적이지 않았을지언정) 선택이 아니었다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하지만 목표가 없다면? 이건 또다른 문제일세. 불확실함 속에 질주하는 것보단 그저 흘러가는 삶 그대로를 즐기는 것이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목표를 찾는가? 막연한 것이 아닌 실재하는, 만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말일세. 또 우리가 쫓는 것이 모호하고 막연한 것이 아닌, 매혹적이지만 실체가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문제는 우리가 사람이 아닌 목표를 이해하려한다는 것일세. 삶의 비극이기도 하지. 우리는 일련의 것들을 달성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일련의 것들에 복무한다네. 그러니까 우리는 정작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조정한다는 것일세. 자네의 어렸을 적 꿈이 소방관이었다고 해보세. 나는 자네가 여전히 소방관을 꿈꾸리라 믿지않네. 바로 자네가 달라졌기 때문이지. 달라진 건 소방관이 아니라 바로 자네일세. 나라는 인간은 과거의 총체이자 경험이라는 상호작용의 결과일세. 앞으로의 경험과 또 앞으로 축적될 경험만큼 자네는 또다른 사람이 되지않겠나. 그리고 자네의 관점은 또다시 바뀔테지. 이런식으로 계속 반복되네. 이 모든 순간순간들이 자네를 변화시키는 배움의 단계가 아니겠나.

그러니 우리의 삶을 변화하는 관점에 따라 시시때때로 달리 보이는 목표에 맞춰 조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나? 신경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어찌 무엇 하나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정한 목표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물론 이 주제를 여기서 다루기는 적절치 않네.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인간의 의미”에 대해 쓰여졌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는지는 신만이 알걸세. (여기서 ‘신’은 단지 수사적 표현일 뿐이네.) There’s very little sense in my trying to give it up to you in the proverbial nutshell, because I’m the first to admit my absolute lack of qualifications for reducing the meaning of life to one or two paragraphs.

나는 “실존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네만, 그런 종류로 염두해두어도 좋겠지. 또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실존주의: 도스토예프스키부터 사르트르까지”를 보기를 권하네. 그저 제안일 뿐일세. 자네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순수하게 만족하고 있다면 이 책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아무튼 세속적 목표에 마음을 두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현명한 것 같지가 않네. 그러니까 소방관이 되기 위해, 은행가가 되기 위해, 또는 경찰관이, 의사가 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게. 나는 우리가 소방관이나 은행원,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네. 기질과 환경에 따라 사람은 특정한 능력과 욕구를 갖게되고, 관습적인 어떤 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능하는 것이 그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나. 다만 그런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에 방점을 찍고 거기에 목표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일세. 인간은 무엇인가 되어야만 하네. 자신이 바로 중심이 되어야 한다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욕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거네. 그래야만 그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정체성을 획득하고, 자기계발에 한계가 없는 길을 택하므로써 자기 능력에 대해 회의를 갖는 일도 피할 수 있을 것이네. 또 시들해지거나 영감을 잃는 일도 없을테지(자기 능력 이상의 일에 굴하거나, 자기 능력에 맞게 목표를 수정해야 하거나 하지 않고).

우리는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치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네. 목표는 당연히 그것에 부차적인 것이지.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목표가 중요한 지점이고. 인간이 미리 설정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능해야만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겠나. 다른 사람이 자네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포기하는 것일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의지말일세.

자네가 8가지의 직업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해보세. 자네가 그 8가지의 직업 중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자네는 9번째의 길을 찾아야 하네. 이게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일세.

물론,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지. 자네는 상대적으로 편협한 삶을 살아왔네. 수평적이기보다는 수직적인. 그러니 자네가 그런 방식으로 느끼는 것은 이해할만 하네. 하지만 주저하고 미루는 습관은 자신 스스로가 아닌 상황이 선택을 하게 만들것이네.

그러니 자네가 그런 사람들 중 한사람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진지하게 찾아보던가. 하지만 명심하게. 목표를 찾는다는 것은 삶의 방식을 찾는다는 것일세. 자네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하고, 그 방식의 삶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일세. 자네는 무엇을 찾아야 할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네.

그리고 여기에 난제가 있네. 보다 나은 무언가를 찾기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모를 일이네. 그렇지 않은가? 본인말고 그 누가 판단할 수 있겠나? 하지만 찾기를 결정하는 것만으로 자네는 선택을 만들기 위한 먼길을 가는 것일세.

여기서 쓰기를 멈추지 않으면 한 권의 책이 될 것 같네. 내 말이 혼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네. 명심하게, 이는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네. 일반적으로 적용될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자네에게는 아닐지도 모르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신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건 단순히 내 것일 뿐이네.

내 말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알려주게. I’m not trying to send you out “on the road” in search of Valhalla, 그저 살아가면서 자네에게 주어진 선택을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일세. 그 누구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은 여생동안 해야할 필요는 없잖은가. 하지만 그러도록 결정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야한다고 스스로 확신시키게.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될 걸세(다들 그러잖은가).

그럼, 자네의 회신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네.

자네의 친구, 헌터로부터.